『씨앗을 지키는 사람들』
2000년대 초에 출간된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의 엄마상에는 기술과학과 여성의 관계를 그리는 기존의 태도가 좀 더 노골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주인공 진희의 엄마 정 박사는 볍씨 품종을 개발하는 과학자이다. 정 박사는 인공 성장호르몬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거대 자본의 이익과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데 이를 두고 동료 박사는 “당신만큼은 양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이 어머니니까요.”(42면)라고 질책한다. 정 박사는 이에 대해 “더 비싸더라도 진희에게 안전한 음식을 먹이려고 애쓴느 자신이 아닌가. 임신한 걸 알았을 때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도 당장 끊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뭐란 말인가.” “난 돈을 위해 일하는 과학자밖에 안 되는 것인가.”(42면)라고 자책한다. 질책하는 문 박사나 자책하는 정 박사 둘 다 과학자로서의 가치관과 반성이 아닌 엄마로서의 자각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결국 정 박사는 엄마의 정체성에 따라 과학자로서의 자기 임무를 그만두고 종자의 지적재산권 행사에 반대하는 진희 아빠의 사회적 행동을 뒷받침하는 연구를 수행하고서야 비로서 긍정적 인물로 자리매김된다.
『달 위를 걷는 느낌』
청소년소설 『달 위를 걷는 느낌』에서 핵융합과학자이자 달 탐사를 다녀온 우주인 아빠와 아스퍼거증후군이 있는 딸 루나는 과학 지식으로 소통하는 관계인 데 반해 엄마는 과학에 관심이 없는 무지하고 무기력한 인물로 묘사된다. 루나는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학설에 관해 아빠와 대화하곤 했는데, 엄마가 도킨스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니 말문을 닫는다. 루나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가 과학인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과학에 무관심하기에 루나는 오직 아빠와 각별한 애정을 쌓아 나간다. 엄마는 과학기술을 잘 알 만큼 지적이지 않기 때문에 루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규정된다. 이 책에서도 기존 SF 어린이청소년문학에서 비치는 엄마를 비롯한 여성 인물과 여성성이 보편적으로 과학시술에 비판적이거나 대립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권혁준은 「아동청소년문학에 나타난 SF적 상상력」에서 『싱커』,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등을 분석하며 이 작품들이 과학-재앙-남성(정치가, 사업가)/자연-구원-여성(어린이, 청소년)의 이분법 구도로 전개된다고 정리했다.
와츠먼
기술-남성적 특성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지닌 과거 페미니즘과 달리 주디 와츠먼의 테크노페미니즘은 과학시술, 특히 디지털 기술과 여성의 삶, 주체성, 행위들이 긍정적으로 결합될 가능성에 주목한다. 과학기술과 여성의 관계를 탐구한 페미니즘 이론은 에코페미니즘에서 사이보그페미니즘과 테크노페미니즘으로까지 변화해 왔다. 이는 이분법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여성 정체성 논의를 진행해 온 페미니즘 이론 변화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울러 이는 과학기술로 인해 유토피아/디스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술 결정론을 지양하고 기술이 사회적 맥락과 관련 맺으며 의미와 내용을 구성한다는 사회구성론의 시간에 근거한다. 이러한 페미니즘 기술 이론들은 SF 어린이 청소년문학의 엄마상에 기술 애호 혹은 기술 비판으로 투영된 여성과 과학기술의 상관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는 모성 재현 방삭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성주의 관점뿐 아니라 과학기술 관점에서도 문제적이다. 여성 정체성을 이분법으로 경계 짓고 있으며 과학사와 과학이론의 오랜 논쟁인 기술결정론과 사회구성론 중 오직 시술결정론의 입장만이 고수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