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정 <잘 먹고 있나요?>
김혜정 청소년소설 『잘 먹고 있나요?』의 주인공인 열여닯 살 재규의 고민 역시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내년이면 고3인 재규는 미술 전공으로 학교 예체능반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입시 미술학원에 다니는게 아니라 초등학생 때부터 다닌 동네 미술학원에서 그저 취미처럼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재규가 학원을 옮겨 대학 입시를 위한 그림 연습에 몰두하지 못하는 건 자신에게 대단한 재능이 없다고 여기며 미술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 일생의 밑그림을 설계하고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재규의 갈등이 힘겨운 까닭은 그것이 단지 자신의 재능과 적성에 관해 판단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게 좋긴 한데 자신이 없”는 까닭은 바로 “미대에 갈 수 있을지, 간다 하더라도 나중에 먹고살 수는 있을지”걱정이 되어서다. 그렇다면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삶의 유일무이한 목표인 사회에서 과연 재규는 어떤 방법을 궁리할 수 있을 까. 꿈과 현실 사이에서 청소년은 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먹고 산다'는 것
‘먹는’ 행위가 각종 매체와 일상의 대화에서 주요 화제가 된 적이 있을까? ‘맛집’을 기행하고 맛의 비결을 알려 주던 방송은 이제 ‘먹방’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연예인의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장면만으로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지는 추세다. 누군가에게는 즐거움과 건강을 위해 먹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살기 위해 먹는 다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실을 우리는 살고 있다. 먹는 행위가 사회의 주 관심사가 된 반면 정작 먹고사는 일은 더욱 녹록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는 요즘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하는 문제는 계층을 구분하고 존속시키고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새로운 식당에 다녀온 사람이 그 식당에 대해 애기하는 내용은 그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세 단계로 나뉜다. 첫째, 그 식당 양이 참 많더라, 둘째, 그 식당 맛있더라. 셋째, 거기 분위기 괜찮던데, 이는 음식을 먹는 행위가 단순히 개인의 일상적인 선택 영역을 넘어 자본주의적 욕망과 제도에 따라 재편되는 지금 상황이 투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잘 먹고 잘 살기
‘잘 먹고 잘 살기’는 점차 우리 삶의 최우선 가치로 자리매김되는 듯하다. 현재 우리의 욕망을 ‘잘 먹고 잘 살기’로 대변할 수 있지 않을 까. 부모들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일을 하고 아이들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공부를 한다. ‘잘 살기’ 앞에 ‘잘 먹고’가 놓이게 될 때 ‘잘 먹고’의 탐욕과 자기중심성은 ‘잘 살기’의 ‘잘’을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으로 만들고 만다. ‘잘 살기’는 그 앞에 다른 말 예를 들어 ‘열심히 일하며’라든지 ‘욕심 없이’라든지를 대신 넣어 보면 단번에 확인된다. 물론 어느 시대, 어느 사회건 경제적 안정은 삶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며 행복의 기본 조건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혹시 경제적 풍요를 삶의 유일한 만족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경제적 풍요가 점점 중시되고 여러 경제적 가치들이 더욱 강조되는 현상마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잘 먹고 잘 살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욕망은 청소년이 현재의 행복을 누리고 미래이 인생을 계획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