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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전사, 삶, 영성

by audrybook 2024. 1. 24.

『마당을 나온 암탉』

전사

마당의 동물들과의 대립 속에 자기를 인식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먹이를 끊고 알을 낳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잎싹은 실존주의 전사가 된다. 주어진 운명과 인간에게로서의 해방을 꿈꾸며 처절하게 목숨을 담보로 싸우면서도 인간이외의 다른 마당 식구들, 그리고 들판의 생명체들과의 관계에서는 동경과 관심으로 대한다. 특히 자신과 닮은 수탉과 암탉에 대해서는 존경과 부러움을 가졌지, 시기와 질투의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아카시아 나무 잎사귀가 부러워 잎싹이라는 이름을 짓는 것은 우리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바람, 햇빛과 나무를 매개하여 꽃을 피우는 잎사귀처럼 타인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는 꿈을 지는다는 것은 실존적이며 동시에 생태적인 꿈과 책임감인 것이다.

잎싹은 마당을 나와 찔레덤불 안에서 약간 푸른빛이 도는   하나를 발견한다알은 뽀얀오리의 알이다그리고 잎싹은  알의 부모가 누군지 몰랐다 알에 부여되는 잎싹의 모성애는 그것이 자신이나 나그네의 새끼인지 아닌지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잎싹은 닭장에서 나와 나그네와 관계를 맺고, 비록 실패했지만 마당 식구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나그네의 죽음으로 낙담하지 않고, 어머니로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홀로 선택의 길들을 헤쳐나갔다. 죽기 전 나그네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잎싹은 마당으로 돌아갔다. 가장 안전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철저한 연대의식으로 똘똘 뭉친 마당에서의 잎싹의 처지는 배척의 대상이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안티페미니즘적 성격과 반생태주의적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생명보다 중요한 혈통주의를 극명히 보여 주는 장면이다. 초록머리가 청둥오리 나그네의 새끼임을 알게되지만, 잎싹은 혈통이나 종에 구애받지 않는 모성성으로 부끄럽다거나 흔들림이 없었다. 주인 부부의 욕망을 알아차린 잎싹은 험난하지만 아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광야로의 삶 즉, 영성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영성의 길 위를 가는 많은 이들이 황무지에 이르게 된다. 사막이나 광야 같은 곳에서 그들은 신이 자신을 버렸다고 믿는다. 때로는 신이 그들을 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영성을 위해서는 그 모든 상황을 감수하며 신에게 감사하는 초월의 삶에 이르러야 한다. 족제비의 공격, 먹이의 부족 같은 생존을 위한 시험들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존만을 위한 시험이 아닌, 아기를 위한 힘겨운 시험을 스스로 감당하려는 어머니로서 처절한 결투도 불사했다.

 

영성

초록머리가 성장할수록 잎싹과 아기는 서로 다름을 알아간다. 초록머리가 집오리 무리를 따라 마당으로 갈 때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의 뒤를 따라 마당으로 간다. 자신에게는 없는 초록이의 가능성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끈으로 인해 청둥오리 무리에 끼지 못하는 초록머리를 위해 밤새 끈을 제거한다. 생명을 넘어 아이의 인생의 걸림돌을 제거해주기위해, 결국 아이를 자신에게서 더 넓은 세상으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진정한 영성을 보여주는 장면은 결말일 것이다. 잎싹에게 족제비는 원수이다. 나그네의 원수이자 자신과 아이의 생명을 노렸던 철천지 원수란 말이다. 족제비의 새끼들까지 품은 잎싹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 모두의 어머니가 되었다. 진정한 영성의 길로 가게 된 것이다. 그녀는 하나의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몸으로부터 떠난 그녀의 영혼은 진정한 영의 세계에 이른 것이다. 이 결말은 생명체를 넘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진정한 영성의 세계로 들어선 잎싹을 보여준다.